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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치유와 회복은 속히 온다
이름 동산가족센터 작성일 14-10-22 12:19 조회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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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의 고등학교 자퇴, 연이어 둘째아이도 자퇴했다. 그리고 대안학교에 다니게 되니 남편과 나는 “네 탓이다! 내 탓이다!” 하면서 말다툼이 잦아졌다.
남편이 나를 알아주었으면, 내 마음 좀, 내 어려움 좀, 내 몸이 힘든 것 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아이들의 양육에도 남편이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많았었다.
그런데 가족사랑만들기 초급과정이 끝날 무렵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에 대해서 알아 가는데 남편의 눈물짓는 모습을 보고 그도 치유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2학년 때 길에서 나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여자아이를 보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너는 누구냐!”고 물어보았는데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누구며 나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엄마는 내가 업동이로 왔으며 백일 무렵 버려졌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정말 하늘이 까맣게 보였다. “나는 너의 친엄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라고 얘기해주길 바랬지만 사실이었다. 이것은 중2인 사춘기의 나를 힘들게 했다. 버린 엄마는 버려서 나쁘고 기른 엄마는 자신이 낳은 자식이 아니니 나한테 그렇게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사람도 믿을 수 없었고 이 세상은 거짓되고 믿을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양어머니는 후처이시면서 양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 왔다 가셨고, 그것도 초등학교 2학년 때에 돌아가셔서 양조장의 술 찌거기를 먹고 살 정도로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더 잘 먹고 살라고 보낸 곳도 가난한 곳이었다. 같이 자란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에게서 매를 많이 맞았다. 언니는 무서움 자체였다. 머리 핀을 잃어버리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머리채를 휘어 감거나 나를 묶어서 감금하기 일쑤였다. 양 어머니에게 “언니가 무섭고 때렸다”라고 하면 엄마는 “우리 둘 다 어디로 각자 보내는 게 좋겠다.” 하셨는데 엄마의 말씀은 위안은 커녕 더 무섭게 느껴졌다. 양어머니도 매를 대시었다 항상 “염병할 년, 싹이 노란 년,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욕을 했는데, 내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알고 난 후에도 계속 욕을 하셨다. 욕의 의미를 알아가면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들기도 하였었다.

어려서 어머니는 밥과 술을 파시는 장사를 하셨는데 나는 밖에서 손님이 가실 때까지 서성거리거나 아니면 엄마의 먼 사촌 집에서 잠을 자곤 했다. 눈치를 보며 사는 것이 나의 삶이었는데, 지금도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서 두려워하며 살았다. 두 딸을 낳고서, 세 살 된 딸아이와 한 살 된 딸아이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 아이들이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이런 생각이 들까!” 아들이 없으면 남편이 나를 버릴 것만 같아서 셋째를 임신했는데 딸을 또 낳았다.
친어머니와 관계는 양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년에 몇 번 만나는 사이이다. 그 관계에서도 어머니는 떨어져 지낸 만큼 지금이라도 잘해주시겠지 기대를 했었는데 편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다. 결혼하기 전 어머니와 몇 달을 같이 살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돈을 꾸셨고 그 돈을 갚지 않으셨다. 그 돈은 양어머니 돌아가시고 남은 조의금이었다. 어머니와는 몇 달 같이 살다가 직장으로 인해 다시 떨어져 살게 되었고, 교회목사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언니와 동생들의 산후조리를 해주시면서도 그리고 동생들이 결혼 살림을 사갈 때 동생 것은 일일이 챙기다 못해 남편에게 심부름까지 시켜가면서 준비했던 어머니는 나는 무엇을 사는지 어디서 사는지 도통 관심도 없으셨다. ‘왜! 어머니를 만나러 이 집에 와야 되는가?’ 남편에게 투정이라도 부릴라치면 “아이들에게는 외가가 필요하고 남편에게는 처갓집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였다. 어머니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내가 이해하라고 한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버림받은 3개월의 아이가 버린 엄마를 향해 엄마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나! 지금의 엄마의 태도를 이해하라니! 오히려 내게는 남편이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결혼 후 두통이 심하여 CT도 찍어보고 원형탈모증도 세 번이나 왔었다. 38세 때는 심한 우울증과 공항장애까지 왔는데, 공황장애의 무서움을 이기고 병원에 다니는 것도 힘이 들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나는 설악산에서 열리는 부부사랑만들기에 참여하였고, 그리고 내처 가족사랑만들기와 연구원에서 치유상담을 공부하며 문제의 근원을 알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의 관계의 어려움은 양육에 있어서 고스란히 딸들의 어려움으로 되어버렸다. 나는 아이들에게 매를 댔고 힘들게 했다. 상담 선생님의 말씀은 아이들의 자아가 너무 약해서 왕따 당하기 쉽고 너무 여리다고 말씀하신다. 결국은 아이들의 문제가 나의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젠 알았으니 회복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가족사랑만들기를 하면서 책을 읽고 여러 부부들의 삶의 이야기도 듣고 리더의 가르침과 부부영성수련을 통해서 나를 객관화 하고 나의 상처가 무엇이었으며 남편과 내가 서로 무엇을 원하며 갈등하고 살았는지 알아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만남들이 시간이 지나가자 친정처럼 푸근히 느껴지면서 기다려지고, 리더에게 이 주일간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함으로 속이 후련했었다.
그러면서 항상 대인관계에서 “너도 나를 떠날 사람, 버릴 사람” 하면서 신뢰하지 못했는데, ‘너가 나에게 잘해주면 이상하지, 나에게는 잘되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항상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렸다는데, 이제는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알 것 같다.

지난 12월에는 큰아이와 영성수련에도 다녀왔고 남편과는 가족사랑만들기 중급과정을 하고, 고급과정도 같이 하기로 했다. 알면 알수록 치유와 회복이 속히 오는 것 같다. 문을 두드리기를 잘한 것 같고 믿어지지 않던 무서운 하나님이 가깝게 느껴진다. 항상 하나님이 무서운 선생님마냥 높은 상사처럼 그리고 기도하다 말다가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아 하늘보고 하나님 계시냐고 허공에 물어볼 정도였는데,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은 내게 다가오시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은혜의 자리에 있다. 이제는 은혜의 깊은 강물에 나를 담그고, 이전의 헐고 흉했던 마음의 상처가 강물 속에 들어가 깨끗이 치유를 받았던 나아만 장군처럼, 은혜의 깊은 강물 속에서 온전히 나을 것을 믿는다. 치유의 한걸음, 한걸음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리더부부와 같이 해 준 남편에게 감사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 화이팅!
 
[이 게시물은 동산가족센터님에 의해 2014-10-22 12:21:21 초급과정체험후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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