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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이다'할 때 그 때 기적은 일어난다
이름 동산가족센터 작성일 14-10-22 12:26 조회 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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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바둥거리며 살아 왔는지…

어린시절, 엄마에게 유일하게 반복해 들었던 말은 ‘너만 태어나지 않았다면'이었다. 가난과 고된 시집살이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던 엄마… 내가 아니어도 문제투성이인 집에서 나는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가능하다면 없어졌으면 좋았을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내 삶의 상처인지 알지도 못했다. 이 정도 상처쯤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생각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결혼하면서 부터였다.
세 명의 시누이와 지하 방에 신혼살림을 차린 난 행복을 채 느껴보기도 전에 세 시누이와 긴장의 줄을 놓지 못했다. 결국은 피해의식으로 영혼과 육체는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맞벌이로 소진한 몸으로 남편의 연이은 사업실패, 성급한 임신… 그 삶의 무게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던 나의 존재는 깨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무의식에 얌전히 눌러 놓았던 내 안의 내가 나오는데 그 엄청난 분노와 피해망상과 인정욕구 그리고 수치심…

상황이 힘들어지자 난 남편과 가정을 세우고 만들기 보다는, 쉽게 포기하는 쪽을 선택했다. 익히 내가 아는 현명한 선택은 포기였다. 그리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아들을 선택했다.

너무나 쉽게 일찌감치 남편을 밀어냈고 몇 번이나 헤어지기 위한 시도도 했다. 당연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남편만 내 삶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아니 지금이라도 사라져 준다면 난 두 아들과 엄마랑 행복할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더디 가는 세월만이 마냥 원망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런데 큰아들을 낳았을 때 엄마가 교회에 나오면 아들을 돌보아 주겠다는 말에 겨우 교회를 출석하던 내게 드디어 하나님의 작업(?)이 들어 왔다. 하나님은 성경공부 중에 잔잔히 나를 만나 주셨고 마음에 평안을 주셨다. 상황이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도 그 평안이 어디서부터 임하는지 것인지… 그때부터 조그마한 교회에서 교사로 성가대로 봉사도 하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 그 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던 즈음, 하나님은 결혼하고도 13년을 함께 한 정신적인 지주였던 엄마를 내게서 떠나게 했다. 내가 큰 아들의 교육환경을 위해 좀 더 나은 학군을 찾아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 이유였지만 예정되었던 고난(축복!)의 시작이었다.

싸움만하고 나면 엄마에게 뛰어 갔고 아프거나 기쁘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도 제일 먼저 생각났던 엄마! 그러나 이사와 동시에 시작된 아들의 반항으로 난 엄마와의 밀착되었던 삶을 그리워할 시간도 없이 소원해졌다. 남편보다 소중했고 내 애인이자 내 삶의 모든 것이 되어 버린 아들의 반란, 남편으로 인한 고통은 고통도 아니었고 사는 게 사는 것도 아닌 그 막막함... 아들의 반항, 거짓말, 나를 쳐다보는 경멸의 이글거리는 눈동자, 내게 향한 분노의 표출… 한번은 친구와 다투었는지 왼쪽 뺨이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고 입술엔 피와 멍으로 범벅이 된 채로 돌아왔다. ‘아, 하나님 왜요? 하나님 왜요?’ 내 두 눈엔 눈물이 솟았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 통곡하는 내 등 뒤로 아들은 말했다.

‘이래서 들어오기 싫었어! 무슨 일만 있으면 왜 우냐고… ’
그 상황에 내가 우는 거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들과 하루하루를 전쟁과 조마조마함 속에서 지내던 나는 아들의 일을 엄마가 아닌 남편과 의논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다급했고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남편은 갑작스럽게 변한 아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면서 매와 질책으로 훈계했고 나와 또 다른 마찰을 일으켰다.
아들의 방황이 고통스러워 치유상담연구원에서 공부하기를 결단하고 일반과정에 입학하였다. 저녁시간이면 나를 돌아보는 그 시간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에게 내가 얼마나 나쁜 엄마였었는지, 상한 사랑인줄도 모르고 그 상한 내 사랑을 먹여왔던 지난 시간을 조용히 눈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다 남편 탓이었고 남편 때문에 아들이 저렇게 되었고 내 인생을 망쳐 놓은 적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깨진 것은 그때였다. ‘남편의 탓이고 아들 땜에 너무 힘들다고 불평할 때’보다 ‘내 탓이고 내가 달라지면 내 가정이 바뀔 수 있다’는 말씀이 나를 붙잡았다.

일단, ‘내 탓이라’ 관점이 바뀌니 문제는 생각보다 쉬었다. 공부하면서 적용하고 고치고 또 안 되면 와서 울고 다시 결단하고 공부하고 고치고 적용하고…
반복된 2년이 지난 후 난 ‘가족사랑만들기’라는 과정이 연구원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때도 남편보다는 아들의 방황시간이 짧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형식으로 등록을 했다. 당연히 남편은 자기의 수치가 드러날 두려움을 피해 일을 핑계로 이래저래 빠졌다. 어차피 내가 변해야할 과제라면 남편이 오던 오지 않던 이미 내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럼에도 혼자 참석한 날은 힘이 빠지고 더 의기소침해졌지만 한 모임 한 모임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그리고 남편을 다듬어 가고 계셨다.
그러나 빨리 변화하지 않는 아들을 보면서 아니 더욱 반항이 심해질 때는 당장이라도 다 때려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혹자는 말했다. ‘이젠 끝이다’라고 생각할 때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고… 그랬다. 빨리 더 빨리 변하지 않는 나의 가정이 중급을 한들 무슨 변화가 있을까 생각하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그 와중에 어떤 비젼을 보았는지 당연히 중급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나는 못 이기는 척 중급을 등록했고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다.
중급과정 3번째의 모임이 끝난 후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쓴 뿌리인 경제적인 문제(남편의 연이은 사업실패는 많은 빚을 남겼고 난 그 빚에 이자의 이자가 붙어서 엄청난 부채를 갖고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이 그 빚과 문제를 가지고 내게서 사라져 주기만을 간절히 바랬다)를 중보기도 모임에 내어놓게 하셨다. 그리고 다른 팀원과의 나눔을 통해 치부라고 생각했던 문제마저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보게 하셨다. 직면하겠다고 얘기하고도 내 안에 큰 두려움과 부담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3년여를 통해, 나를 훈련시켰던 헛되지 않은 시간들을 통해 담대함과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이 이미 내게 있음을 믿게 하셨고, 내 입술을 통해 ‘문제를 직면하겠다… 남편을 사랑한다… 이제 이혼은 하지 않겠다… ’라고 조원들 앞에서 고백하게 하셨다.

남편의 눈에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을 보는 내게 남편의 고통이, 계속되었던 사업의 실패와 남편보다 엄마를 정신적으로 더 의지하는 아내,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 아이들 앞에 깨어진 권위를 복구하기 위해 분노와 매로 자신을 포장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로서의 그 통곡이 내게 전해졌다.
아~~~ 하나님! 나만 피해자이고 나만 억울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더한 고통 속에서 있었음을, 남편의 절규가 17년만에 처음으로 내 귀에 들려졌다. 결혼 후 피해의식으로 내 눈을 가리고 내 귀를 막고 맘을 닫아버렸고 사랑을 주기보다 사랑받기 원했다. 내 것을 나누기보다 내 삶에 누군가 끼어들고 내게 폐를 끼치는 것을 용서하지 못했던 병들고 상처투성이인 내 삶에 남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들어올 수 없게 했던 나…

막상 남편의 부채를 열고 들어섰을 때 난 어이가 없었다. 얼마남지 않은 금액마저 깨끗하게 정리하고 내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었던 남편의 그 오기와 상처난 자존심을 보았기에… 남은 부채는 남편과 협의하여 저리의 융자를 빌려 정리했고, 그러자 무엇보다 늘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뭔가 곧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은 듯했던 내 마음이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17년의 통곡과 고통과 상처의 시간들을 얘기할 때 다른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그런 훈련의 날들이 있었다고… 고통 중엔 난 도리질을 하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싫어요… 나, 살기 너무 힘들어요’

그러나 이제, 나는 내 삶을 간증하게 하신 하나님을 감히 사랑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내 안에서 나보다 더 아프게 가슴앓이하며 나를 지으신 주님을 체험했기에…
이제 상처와 눈물로 뿌린 씨앗들이 결실을 맺을 그 날을 믿기에, 나의 노래가 되시는 하나님을 나는 오늘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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